지난 주말의 일이었다.
삼성동 <핸드메이트 코리아 페어>를 보고 지인을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이 불발이 되어 예상보다 일찍 귀가를 했다. 오후 3시 경. 하늘과 땅이 온통 녹아내릴 듯한 더위를 뚫고 힘들게 돌아온 우리 빌라 입구엔 여느 때의 주말처럼 차량이 한 대도 없었다.
"다들 주말만 되면 어디론가 떠나는 구나. 부럽다..."
터덜터덜 집에 돌아와 먼지 가득 엉켜붙은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자니, 뒤늦게 배가 고팠다.
창밖에선 고딩들이 담배를 피며 수다떠는 소리가 들리고. 담배 냄새가 비위를 뒤트는 것만큼이나 강하게 허기가 밀려왔다.
"아, 어제 남은 곰탕 마저 뎁혀서 밥이랑 같이 먹어야지!"
이 더위에 무슨 곰탕이냐 싶으면서도, 배가 고픈데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급히 곰탕 냄비를 꺼내 가스렌지에 올리고 스위치를 돌린다. '틱- 화르르'
근데, 불이 이상하네. 분명 점화가 되었는데 갑자기 툭 꺼진다. 다시 스위치를 돌려보아도 '틱-' '틱-' 거리긴 하는데 불꽃이 올라오지 않는다. 3개 스위치를 다 돌려도 마찬가지.
갑자기 허망한 생각과 함께 서러움이 밀려와 그냥 방에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버렸다.
눈을 떴을 땐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 여전히 가스불은 들어오지 않는다. 주말이라 도시가스 업체도 일하지 않을 것 같은데, 다음 주까지 이대로 밥을 못먹는걸까 고민하며 혹시나 하여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가스렌지에 불이 안들어온다.
가스냄새도 안나네?가스 요금 밀린 것도 없는게 가스 끊긴겨? 주중에 하루 AS불러야겠는데, 뭐야... 비온다고 벽엔 물 스며들고, 가스는 안나오고, 밥도 없고 뭔가 되게 불쌍하고 서러운데? ㅡㅡ;"
역시나 다양한 인생 경험을 가진 친구들이 조언을 한다. 조언에 따라 보일러를 돌려봤는데,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 이건 필시 외부 레버가 내려진거라고.
밖이 어두워 다음 날 확인하기로 하고 그날 저녁은 주전부리와 함께 보냈다.
일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혹시 몰라 가스요금 고지서(고객 번호와 고객센터 번호를 확인하기 위해)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정말 외부 밸브가 잠겨 있네?
근데 우리집만 잠긴게 아니다. 한 두 집 빼놓고 다 잠겨 있다. 게다가 1년 동안 이 집에 살면서 대충 눈치로 아는 건 잠겨 있는 집들은 주말에 주로 집을 비우는 집들이다. 음...
밸브를 열고, 다시 가스를 쓸 수 있게 된 후 저녁에 볼일이 있어 나가는 길에 다시 확인을 해 보았다.
그 사이 빌라 주차장엔 귀가한 차량들이 속속 들어와 있고, 많은 집들의 밸브가 다시 열려 있다. 그 와중에 열리지 않은 두 집.
아이들 장난이라고 하기엔 왜 하필 가스 밸브였나? 라는 의문이 들며, 혹시나 휴가철을 이용한 빈집털이들의 체크 방법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
휴가 기간에 외부 전기 계량기를 보며, 계량기가 돌아가지 않으면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고 빈집털이를 한다는 글을 봤다. 근데 사람이 없어도 전기는 쓸 수 밖에 없다. 냉장고도 있고, 요즘은 타이머형으로 일정 시간이 되면 전기가 공급되는 시스템도 많으니.
그런데 가스라면? 집에 사람이 있다면 가스를 쓰지 않을 수 없고, 여름에도 찬 물에 샤워하는 사람들은 드물기 때문에 가스가 잠기면 바로 확인하고 열어둘 것이다.
경찰에 신고를 하기엔 증거가 부족하고, 단순히 심증일 뿐이다. 이제 장기간 집을 비울 때는 외부 가스밸브를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이웃에게 하고 가야하는 시절이 아닌가 싶다.
또한 가스공급회사에도 수시로 확인 요청을 하는 수 밖에.
세상이 흉흉하다. 빌라 계단에 '주의'하라고 공고라도 붙여야 할까?
<휴가철 빈집털이 피해 최소화 하는 방법>
1. 우유, 신문 배달 중지하여 문 앞에 쌓이지 않도록 한다.
2. 우편물은 우체국에 '우편물 일괄 배송 서비스'를 이용한다.
3. 이웃에게 전단지 등을 치워달라고 부탁한다.
4. 관할 파출소에 휴가를 미리 신고하는 '빈집신고제'를 이용한다.
파출소나 지구대를 방문하여 신고양식을 작성하면 된다.
5. 귀중품은 은행의 금고를 이용한다. 2~4만원 정도의 이용료를 지불한다.
6. 여력이 된다면 보안업체의 가정보안 상품을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