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한 주도 빠짐없이 나가고 있는 텃밭은 초보티가 팍팍하는 '자유분밭' (자유분방한 밭)이 되었다.
그래도 상추도 따먹고, 치커리도 따먹고, 열무도 한 번 수확하고 재미가 솔솔한데. 혼자 이 많은 채소를 다 먹자니 배터지고, 나누자니 적은 양이라 아쉬워 하던 중 열무잎을 야무지게 먹고 있는 길 잃은 어린 양... 아니 달팽이를 발견했다.
달팽이는 여린 잎을 갉아 먹기 때문에 보통 해충으로 분류해서 버리는데, 간만에 본 달팽이가 귀여워 얼른 주머니에 담아 왔다.이제 나의 유기농 채소는 이 녀석과 나눠 먹겠음!
사실 달팽이를 처음 키워본 것은 아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아파트 월요장에서 사온 얼갈이 배추 잎 사이에 있는 애기 달팽이를 유리컵에 키워본 적이 있다. 당근을 먹으니 당근색 똥을 쌌고, 상추를 먹이니 상추색 똥을 쌌다. 매일 같이 신선한 채소를 넣어주며, 나와 아이가 애지중지 했음에도 그 달팽이는 어느날 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더니 집에 온지 일주일여 만에 미이라로 발견되었다.
그래서 집에 데리고 와 유리컵에 마트표 상추와 함께 방치하며 혹시나 모를 이별을 대비에 정을 주지 않기로 했는데. 단지 일주일 정도 더 생명을 연장시키는 정도? 어짜피 밭에서 보행로로 던져버리면 죽으니까.
근데 일주일 뒤에도 이 녀석은 생생하다. 역시 유기농 밭에서 자란 녀석이라 튼튼한가?
일주일만에 공식적으로 이름도 생기고 집도 넓혔다.
새싹채소용 간이재배 용기. 사이즈가 딱이다. 더 크면 마트에서 작은 어항을 구해다가 이사하면 된단다.
무식하게 채소를 많이 넣어줬다. 밭에서 직접 따온 채소라서인지 고향의 맛과 향이 나는가? 넣어주자 마자 사각사각 어찌나 잘 먹던지.
위로 이렇게 숨구멍이 많기 때문에 환기도 잘 되고, 물을 가만히 부으면 비오듯 후두둑 떨어져 팽이의 샤워에도 그만이다.
유리컵에 있을 때는 당근과 상추 하나만 넣어줬는데, 새싹채소용기로 옮기면서 흙도 깔아줬다.
산에서 가져온 흙은 다른 미생물이 살 수도 있기 때문에, 다이소 같은 곳에서 파는 배양토가 딱이다.
물론 수상생물용 흙인 '코코넛핏'을 사서 쓰는게 좋지만, 일단 집에 있는 압축 배양토를 활용. 주말에 다이소에 들러 팽이를 위한 세간을 좀 더 들일 예정이다.
달팽이들은 패각..이라는 저 집에 성장점이 있어서 위로 기어오르다가 떨어져 딱딱한 껍질이 다치면 더 이상 성장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럼 아무래도 오래 살지도 못하겠지.
흙을 깔아주면 숨을 곳도 생기고, 떨어졌을 때 패각이 망가지는 불쌍사를 방지할 수 있다.
껍질이 단단해지는데 달걀껍질이 도움이 된다고 해서 넣어줬는데, 먹지를 않는다. 아쉽게도.
회사에서 달팽이를 키워보셨다는 상사분이 두부가 성장에 도움도 되고 잘 먹는다고 해서 두부도 넣어줬는데 입도 대지 않아서 하루만에 빼냈다. 역시나 달팽이들도 입맛이 다 다른가 보다.
일주일 동안 조금 큰 것 같았는데, 이 사진 찍고 사흘이 지난 지금 다시 찍으니 또 더 컸다. ㅎㅎ
흙을 깔아주고 한 동안 바닥에서 놀더니 다시 뚜껑에 달라붙어서 스파이더맨 놀이 중이다.
혹시나 먹을까 하고 넣어준 양배추는... 입도 안대고 화장실로 사용중이다. ㅋㅋ 벌써 3일 째 퇴근 후 저 양배추를 씼어서 다시 넣어준다. 화장실청소!
처음 올 때는 새끼손톱만해서 아이들용 컵에 담아 두어도 좁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고새 이만큼 컸다.
달팽이는 어느정도까지 클까?
내가 데려온 이 아이는 '명주달팽이'로 커봐야 2CM라는데 이미 2센티는 넘는 것 같은데? 잘 키워보자.
난 누구? 여긴 어디?
팽이야, 네가 살 수 있는 한 오래오래 살아보자.